발행일자 : 2023년 6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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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백리(淸白吏) 큰 정신 ③ - 선조들의 청백리 정신, 잊으셨나요?
작성자 kookbangco






김 명 규

()한국광고사진가협회 회장






국가사회의 안정도(安定度)와 질서수준은 그 나라 공직자의 도덕성과 근무자세가 측정의 주요 수준이 된다. 우리의 전통적인 청백리(淸白吏) 윤리를 현실에 재조명해보고 사회가치와 신뢰도를 높여 온 정신적 인물에는 어떤 분이 계셨는지 이서행 박사의 청백리 정신과 공직윤리연구 자료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최척경(崔陟卿)

 

최척경(?~1182)은 예종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경산부판관에 보직되었으며 관향은 완산(完山)이다. 성질이 청렴 개결하여 아전과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였다.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에 돌아와서는 권세 있는 집의 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음이 10여년이나 되었다. 판리부사(判吏部事) 최윤의(崔允儀)가 그의 깨끗하고 곧은 것을 듣고 탐라의 수령을 시키고자 하니, 척경이 두 번째로 외직에 임명되는 것과 임지가 외지고 멀다는 것으로 굳이 사양하니 윤의가 말하기를, “탐라라는 곳의 땅은 멀리 떨어져 있고 풍속은 모질고 악하여서 수령 노릇하기가 실로 어렵다. 그런 까닭으로 그대를 보내는 것이니, 바라건대 그대는 꺼리지 말고 가서 먼 곳의 백성을 위무하여 국가의 근심이 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척경이 부득이하여 임지에 가서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폐단을 없애버리니, 백성들이 다 안정(安定)하였다.

척경이 매우 가난하여 스스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때 마침 전라안찰사가 급보를 올려 탐라사람들이 영위(令尉)의 침어(侵漁)와 횡포를 괴롭게 여겨 반기를 들고 말하기를, 만약 최척경이 수령이 된다면 마땅히 무기를 버리겠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재신(宰臣)들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어진 사람이 있는데 어째서 등용하지 않는가?”라고 하였고, 척경을 불러 비단을 상으로 주고 즉시 탐라 령(耽羅 令)을 제수하였다.

척경이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기를 청하니, 임금은 이를 허락하였다. 탐라에 부임하는 수령이 아내와 함께 가는 일은 척경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탐라의 백성들이 척경이 수령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즉시 경쾌한 배를 준비하여 영접하고, 그가 경계에 들어올 때에는 모두 창을 버리고 여럿이 늘어서서 함께 절하며 말하기를, “()이 오셨으니 우리들은 살았습니다라고 하고 전처럼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지냈다.

명종 조에는 양광도, 충청도의 안찰사가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뒤에 안북도호부사(安北都護副使), 예부시랑비서감(禮部侍郞秘書監)에 이르렀다. 깨끗한 이름과 꿋꿋한 절조가 늙어서도 쇠약하여지지 않았다.



 <出 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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