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3년 6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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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우문예 - 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작성자 kookbangco




전우문예 - 단편소설 소설가 김성열

 

어느 이등병의 귀향(歸鄕)

백발이 성성한 영감님은 심한 함경도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는 깊은 산중에서 화전(火田)을 일궈 근근이 살아간다고 했다.


만봉은 곡기를 구경한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목이 마르면 눈을 뭉쳐 갈증은 면했지만, 배고픔과 추위는 그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눈이 허리춤까지 쌓여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나무뿌리 풀뿌리도 눈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만봉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어느 때는 갑자기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기도 하고, 고향, 냇가에서 동무들과 버들 숲을 헤 치며 고기를 잡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눈앞에서는 허깨비가 광대춤을 춰 대고 귀에서는 죽은 젊은 영령들의 혼이 환청이 되어 들려오는 듯하다. 무릎까지 차는 눈을 헤치다 보면 어쩌다 다람쥐들이 먹다 남은 도토리 껍질을 주워 먹기도 했다. 겨드랑이가 스멀거려 옷깃을 풀고 살펴보면 자신의 몸에 착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은 이와 살이 통통하게 찐 서캐들이 떼 지어 오물거리고 있다. 모두가 살려고 아귀다툼들이다. 만봉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그것까지 일일이 손톱으로 터뜨려 빨아 먹었다. 이제는 기력이 부쳐 움직일 힘도 없다. 자꾸만 눈이 감기고 졸음이 쏟아진다. 이대로 잠들면 그 대로 얼어 죽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산골짝에서 죽어 산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눈이 절로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무래도 이대로 죽으려나 보다. 자꾸만 정신이 혼미해진다. 바로 그때였다. 너덧 걸음 떨어진 바로 앞에서 무엇인가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만봉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 보니 산 토끼 한 마리가 눈 위에서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는 그 토끼가 먹이감으로 보여 급한 마음에 총으로 토끼를 겨누었지만,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그는 곧 깨달았다. 총소리 때문이었다.

그가 산토끼를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산토끼는 만봉을 놀리기라도 하듯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좀처럼 잡히지가 않는다. 그 녀석도 만봉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고 최후의 발악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았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 속을 쫓고 쫓으려 다 사람도 지치고 토끼도 지쳤다. 결국은 토끼를 잡겠다고 달려들던 만봉이 먼저 지쳤다. 만봉은 숨을 헐떡거리며 잠시 많은 생각을 했다. 산토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비유를 했다. 눈 위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도 자신과 똑같고, 지금 만봉에게 쫓기는 산토끼와 자신의 운명이 어쩌면 그리도 꼭 닮았는지도 모른다. 신은 우주의 세계에서 공존하는 모든 생명 들에게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쪽으로 더 힘을 실어주나 보다.

만봉은 토끼와의 식량 전쟁에서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 만봉은 산토끼에게 패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산토끼가 갉아먹던 칡넝쿨을 두 손으로 휘어잡았다. 엄연히 말해 토끼의 식량을 갈취한 것이다. 겨울이라 물기는 없어도 죽지 않기 위해서는 씹고 씹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칡넝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나무개비와도 같은 칡넝쿨을 아무리 씹었지만 얼마나 거센지 식도를 거치는 동안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따끔거리며, 자신도 모르게 한동안 캑캑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요기라고, 배 고래의 허기에 틈새가 조금은 벌어진 것 같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은 마치 원시림 같기도 한 것이 좀처럼 햇볕도 들지를 않는다. 겨울의 짧은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며 전쟁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구름으로 노을을 만들고 있었다.

노을은 찬란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고향에서 보고는 처음이다. 만봉은 모처럼 노을 사이로 따뜻한 햇볕이 스며드는 언덕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이 자꾸만 감긴다. 그때였다. 저 멀리 산봉우리 너머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만봉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민가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며 이제는 살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하여 죽을 힘을 다해 뛰려 했지만 마음뿐이다.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민가는 점점 아득하기만 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엎어지기도 하고 뒹굴기도 했다.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허름한 움막집 앞에 다 닳았다. 그리고 그는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희미하게 나마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집 안방, 아랫목에 이불이 덮여 진 체로 누워있었다. 밖에서는 자신을 두고 아버지와 딸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것 같았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딸의 주장도 틀리지는 않았다.

딸은 아무것도 전혀 모르는 외간 남자를 빨리 돌려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비해 아버지 되는 사람은 길을 잃고 집을 찾아온 손님을, 그것도 멀쩡한 사람도 아니고 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보낸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고 아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는 우리 집에도 젊은 남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확실한 북한 사투리다.

아바이, 남조선 군대인지 아니면 우리 인민군인지도 확실하게 모르면서 집안에 드렸다가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지 않읍네

모르는 소리 말아라. 3k 죽어가는 사람 집으로 찾아 왔는데 모른 체하고 그냥 보낸 다는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매. 인민군이든 국방군이든 그건 가릴 게 안돼야. 살아보겠다고 집으로 쫓겨 들어온 신짐승도 내 그리 못한다. 알겠으메. 그리고 이제는 너도 보다시피 내가 너무 늙어서리 그래. 그래서리 내 하는 말인데, 우리는 당장 젊은이가 필요해서 그러니 이번에는 이 애비 말 들어야 한다. 일간, 그래 내 하는 말이지. 국방군이던 인민군이던 우리에게는 그 땅거 다 필요 없어야.”

영감님의 말은 단호했다. 조금 있더니 문이 열리면서 영감님이 들어 왔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능가 보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수다.”

백발이 성성한 영감님은 심한 함경도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는 깊은 산중에서 화전을 일궈 근근이 살아간다고 했다. 만봉은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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