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3년 3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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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백리(淸白吏) 큰 정신(12) - 선조들의 청백리 정신, 잊으셨나요?
작성자 kookbangco


김 명 규 회장

()한국광고사진가협회

 



선조들의 청백리 정신, 잊으셨나요?

청렴과 근신, 명성과 치적 빛나는 선비 이야기



설공검(薛公儉)

설공검(1224~1302)의 관향은 순창(淳昌), 처음에 효동감무(監務)에 뽑히고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에 선보되었다가 고종 말에 과거에 급제하고 예부랑중(禮部郎中), 우부승선(右副丞宣),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으며, 시호를 문량(文良)이라고 하였다.

공검은 성품이 청렴, 근신, 정직하며 몸가짐은 검소하였다. 일찍이 병으로 누웠을 때 채홍철(蔡洪哲)이 문병을 가보니, 베 이불, 부들자리에 집안이 쓸쓸하기가 승()의 방 같았다. 홍철이 나와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우리들과 을 바라보면 이른바 땅벌레와 고니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충렬왕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주 열(朱 悅)

주 열(?~1287)의 자는 이지(而知)이고 관향은 능성(綾城)이다.

고종 조()에 과거에 급제하고, 나주, 정부의 두 고을과 승천, 장흥 두 부()의 수령을 역임하였는데,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원종 조()에 병부랑(兵部郞)으로서 잇달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안찰사가 되어 위엄과 명성이 날로 떨치니 사람들이 다 존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나라에 큰 일이 있어서 봉명사신을 뽑을 때에는 반드시 그를 맨 먼저 추거(推擧)하였다. 뒤에 지도검의부사(知都儉議府事)로 치사하였으며 시효를 문절(文節)이라 하였다.

()은 마음이 굳세고 곧아서 세상을 따라 우러러 보거나 굽어보는 일을하지 않았다. 악을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여 반드시 소리를 높여 크게 꾸짖었으며, 진실로 마음에 옳은 사람이라 여겨지지 아니한 사림이면 비록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하여 인사하지 아니했다. 또한 비록 달관의 지위에 이르렀을 때라도 스스로 한사였던 때와 같이 살았다.

사방으로 봉명사신이 되어 다녔으나 공평청렴의 한결같은 절조를 지켰다.






< 出 高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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