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3년 3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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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훈장(勳章) 없는 국가 영웅
작성자 kookbangco


훈장(勳章) 없는 국가 영웅

전근식 소대장(백마28연대) 체험수기를 중심으로

 



1965925일 채명신 초대 사령관 지휘각서 제1호 각 부대 하달.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

이것은 주월 한국군 일등병에서 장군까지 전 장병이 귀에 못 박히도록 밤낮으로 말하고 듣는 슬로건이요 신조이다. 철칙으로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중벌을 면치 못할 엄정한 군법이었다.

백마부대는 그 고유 명칭이 보병 제9사단이다. 백마부대라고 부르게 된 연유를 간략히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 휴전선 중동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말 모양으로 생긴 395m의 작은 고지가 있다. 28연대는 백마부대에서 전투서열이 가장 높은 부대였으며, 일명 도깨비연대로 호칭되고 있었다. 이 호칭은 625전란 때 귀신처럼 나타났다 숨었다 함이 빨라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고 해서 북한 인민군들이 붙여준 이름이라 한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나 그 부대를 상징하는 애칭 또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이 통상이다. 그중에서도 전투부대는 독수리, 호랑이, 사자 등 주로 맹수의 이름을 붙여 용맹스러움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은 맹수는 아니지만 슬기롭고 부지런하며 친근함을 주는 동물이다. 더구나 흰 말은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우리 인간에게 성스럽게 여겨지는 말이다. 게다가 도깨비는 말이 갖고 있지 않은 신출귀몰의 특성을 겸비하고 있으니 백마도깨비부대에 덤빌 자 그 누구냐, 문자 그대로 천하무적 상승 부대가 아니겠는가.


철원 들 백마고지 싸움터로 삼고서

싸우고 또 싸워서 대승을 이룬

그 용맹 길이 지켜 나라 겨레 수호에

나가자 9사단의 깃발을 높이 들고

오너라 풍진아 정의의 방패 앞에

우리들은 백마부대 9사단의 용사다.

- 보병 제9사단 가() -



 


파월 특명(特命), 28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장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월 특명이 내려왔다.

19688, 부산 시민들과 학생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출발하여 월남 나트랑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는 28연대(도깨비부대) 2대대 7중대 2소대장으로 보직을 받고, 부대로 출발했다. 나는 소대원들을 처음 만나 소대원들에게 나의 방침을 하달했다.

첫째, 작전할 때는 어디서나 적을 먼저 보고 먼저 쏴라.

둘째, 모든 행동을 민첩하게 행동하라.

나는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우리 28연대 지역은 호찌민의 고향이기도 한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광활한 전라북도 김제 만경대 지역과 같은 곡창지대라 할 수 있다.

그 넓은 지역 앞에는 그 유명한 함바산이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해병대가 주둔해 있던 지역으로, 우리 도깨비부대와 임무를 교환하여 작전을 실시하던 곳이었다. 해병대 이인호 소령이 전사한 곳이며,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던 곳이다.

베트콩들이 이 산을 중심으로 은거하면서 마을로 침투하여 모든 식량을 조달하는 중요한 지역이자, 베트콩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대는 이 베트콩들이 침투하는 것을 섬멸하기 위해서 소대 단위로 목 진지들을 설정해서 이들이 침투하는 베트콩들을 섬멸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 베트콩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 사항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을에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의료시설을 만들어 이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해서 작전을 진행했기 때문에 모든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에서는 지금까지 방어에 치중하였던 작전을 앞으로 공세적인 작전으로 실시하라는 작전 지시에 따라 지금부터는 우리가 직접 베트콩들이 활약하는 근거지를 수색하여 섬멸하는 작전으로 변경되었다. 독자적인 작전권을 행사하며, 중대 단위 진지를 구축하는 중대 전술기지 운용, 적대세력에 대한 수색, 분리 및 차단, 격멸 등 국군 특유의 장점과 전술을 통해 뛰어난 활약을 하는 작전이었다.

우리 대대는 함바산에서 작전을 실시했다. 중대장의 작전 지시에 따라서 우리 소대는 함바산 뒤쪽으로 수색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며칠을 수색하였는데도 적의 근거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중대장으로부터 무전 연락이 왔다. 중대본부 쪽으로 오라는 명령이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급하게 가야만 됐다. 우리 소대는 소대장을 필두로 일렬로 돌진하였다. 그때 봉로봉 쪽으로 가던 중 바위가 많은 소정글에 도착했을 때, 앞에 무언가 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잽싸게 엎드려 M16 소총을 연발로 사격을 실시 했다. 그런데 소정글 속에서 월맹군이 손을 들고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포로다!’ 생각하고 접근하여 생포했다. 즉시 중대장에게 보고하니, 중대장이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뻐했었다. 대대가 일주일간 아무 전과도 없었는데, 우리 중대의 전과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뻐들 했다. 나중에 연락이 왔는데, 포로의 신분은 월맹군 중위 경리장교였다고 했다.




홍도깨비 부대, 부중대장 임명, 활기찬 생활








어느덧 나도 월남에 온 지 고참이 되었다.

일 년이란 세월도 그리 길지 않았다. 2대대 7중대에서 몸에 부상을 입어 한 달 병원에 있다가 부대 복귀할 때 1대대 1중대 부중대장으로 보직을 받았다. 그야말로 도깨비 중에서도 제일 막강한 홍도깨비 부중대장으로 임명되어 활기에 찬 생활을 했었다.

중대가 작전할 때 보급 추진 및 행정도 열심히 보좌하여 중대원들로부터 많은 신망을 얻고 있었다.

중대가 함바산에서 대대 작전에 참석하여 일주일 간 작전을 실시했다.

작전에 참여하는 전투소대 1, 2, 3소대와 중대본부 요원들이 작전 임무를 수행할 때 부중대장과 화기소대는 중대본부 진지를 지키는 임무를 띠게 된다. 일주일 간 작전 임무를 수행한 중대장과 소대원들은 많은 피로로 힘들어했다. 중대장과 소대원들은 2~3일 간 푹 쉬기로 했다.

그리고 화기소대장이 다박 계곡으로(다비아산) 장기 매복을 나갔다. 부중대장은 중대 상황실에서 화기소대장과 작전을 하게 되었다. 다비아산은 중대본부에서 오른쪽으로 함바산에 이어 길게 뻗어 있는 산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농로인데, 뚝이 있는 농로였다. 뚝의 좌, 우는 늪지대로 되어있었고, 양쪽 산과 어울려 완전 계곡처럼 되어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날 소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비아산 와지선에 많은 베트콩들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소대장에게 계속 주시하고 있으라고 지시하고,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시간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였다. 베트콩들이 이동하는데 통산 2~3명씩 이동하는데, 1개 소대 병력이 우리 쪽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서로 교전은 피해야 된다고 판단하여, 소대장에게 그냥 마을로 보낸 다음에, 다시 진지로 안심하고 들어갈 때 때려라.’ 이렇게 소대장에게 연락했고, 소대장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소대장은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처음에는 진지 배치를 선형으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10시경에는 다시 T자형으로 배치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T형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소대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한참을 지나 12시경에 소대장으로부터 아무래도 선형이 좋겠다.’ 고 연락이 왔고,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새벽 2시경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작전이 실시되었다. 크레모아 20개가 동시에 터진 것이다.

나는 소대장에게 연락을 했는데, 소대장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 소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담뱃대(소총) 1, 2, 3……그렇게 계속 연락이 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큰 전과라 생각하고 즉각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중대장은 상부에 연락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분주했다. 전과는 1개 소대 병력 사살, 생포 1, 권총 1, 소총 11, B40(공용화기) 1. 매복 전과로서는 최고의 전과였다.

정신없이 바쁜 시기에 상부에서 훈장 상신 11명을 올리라고 하였다. 행정을 담당하는 부중대장으로서 소대장이 보낸 명단 그대로 보고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늪지대에서 밤을 새우면서 작전 수행을 한 고참 병장 2명이 훈장 상신에서 빠진 것이다.

며칠 후 소대 내부에서 훈장 관계로 잡음이 있는 것을 파악한 나는 중대장에게 소대장은 한 달 후에 귀국하니, 내가 소대장 대리로 화기소대로 가고, 화기 소대장을 중대본부로 와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고 했고, 중대장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화기 소대장은 귀국했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

그때 화기소대는 1번 국도 경비 임무를 띠고 파견 나가 있는 상태였다.

나는 소대 지역에 나가서 소대원들에게 월남에 훈장 타러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나는 귀국할 때 훈장 상신하지 않겠다.’ 며 설득했다. 그 다음 중대장도 귀국했다. 중대장이 귀국길에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부중대장, 훈장 상신 꼭 하라.’ 는 말을 남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훈장 없는 영웅들




그러나 소대원들과 약속한대로 나는 귀국하면서 훈장 상신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전투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보았다.

많은 전과를 올린 사병이 앞으로 자신보다 영구히 군대생활을 해 나갈 분대장을 챙기며 훈장을 양보한 경우,

밤새도록 늪지대에서 모포도 뚫는다는 왕모기와 사투하면서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병들,

사병들과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훈장을 상신하지 않은 장교.

이들은 하나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훈장 없는 영웅들이었다.

나는 귀국 후 내가 더 큰 세상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제대를 하고,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이곳이 바로 원천 유원지다. 1978년도에 용인에서 수원으로 행정구역이 넘어간 곳이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망하게 마련이지만, 전쟁을 웃어버리는

국민도 위험하다.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國防) 이다라고 명언을 남겼다.


이때 55사단 1대대장 박용원 중령이 날 찾아왔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예비군 면대장이 되었다. 나는 예비군 면대장이 되면서 많은 연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월남에 파병한 후 우리나라도 비정규전에 대비해야 한다196841일 예비군을 창설하신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월남에서 여러 전투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게릴라전 지식을 알고 있던 터였다. 또한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망하게 마련이지만, 전쟁을 웃어버리는 국민도 위험하다.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만전을 기하는 것, ‘이것이 국방이다라고 명언을 남겼다.

 

 

 


앞으로의 전쟁은 비정규전으로의 전쟁을 강조




나는 중대원들에게 정신 교육 시에도 우리나라도 정규전에서 비정규전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 “앞으로 전쟁 양상은 옛날과 같이 38선을 중심으로 밀었다 당겼다 하는 전쟁방식은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의 전쟁은 비정규전이 될 것이다. 어느 지역을 침투해서 그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펴고, 심리전을 펴서 그 지역을 자기 사상으로 만드는 방식이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캄보디아 국경선을 넘어 베트남에 침투해서 베트남 전체를 자기 사상으로 만든 것이 월남 전쟁이다.

우리나라는 어떠냐.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김정일이는 124군부대, 813군부대를 창설하여 남한에 침투하여 베트남처럼 자기 사상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우리에게는 여러분들과 같은 예비군이 있지 않느냐.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강원도, 울진, 삼척 지역에 나타난 무장공비 31명을 예비군들이 전부 사살했다는 사실, 그리고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폭파를 목적으로 서울까지 쳐들어 온 것을 전부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 것도 다 여러분들과 같은 예비군들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김정일이는 예비군 때문에 실패를 했다는 것을 실토했다고 한다.

나는 예비군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고, 두터운 신망의 중대장이 되었다. 여세를 몰아 나는 베트남에서 익힌 목진지 개념을 하기로 생각했다. 지역의 많은 어르신들을 찾아가 말씀을 듣고 6·25 때 적군들이 침투했었던 곳들을 정리하여, 지역별로 목진지를 선정해서 구축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대장들을 불러놓고 목진지를 선정해 주고, 그곳에 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1등 하는 소대는 막걸리 1말반을 주겠다고 경쟁을 유발시켰다. 고기리 소대는 개울가에 둥근 돌이 많아 이것으로 진지를 구축했고, 이의리 동녘골 소대는 통나무로 진지를 만들었고, 정평소대는 잔디를 사각형으로 잘라서 차곡차곡 쌓아 진지를 만들었다. 제일 보기 좋고, 튼튼한 정평소대가 막걸리를 가져갔다. 군단에서는 한 달 후에야 모든 예비군부대는 목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대장이 찾아왔다. 수심 어린 얼굴로 큰일 났다는 것이었다.

각 중대별로 찾아가 진지 상황을 점검하는데, 지도상에는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 진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대별로 직접 모든 진지를 하루 종일 다 안내해주었다. 대대장은 그 길로 연대장에게 보고하였고, 며칠 후 사단장이 직접 우리 중대를 방문하였다. 사단장은 이 자리에서 모든 현역 대대장은 이 진지를 견학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고, 경기도 최고 모범 중대장으로 선발되어 청와대에 가게 되었다.

결국, 나는 한 지역에서 20년을 넘게 공무원을 지낸 최초의 사람이자, 20년의 세월을 지역의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서 훈련을 시킨 면대장이 됐다.




월남참전, 훈장 없는 국가영웅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끝으로, 1964715일 한국 정부에 정중한 파병요청서를 보내게 되고, 강력하고 적극적인 미국의 응원에 따라 한국은 월남파병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월남전 참전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20대 초반 어린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이역만리 월남전에 파병되어 공산월맹군과 베트콩 등을 상대로 88개월 동안 정글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생사를 넘나들던 훈장 없는 국가 영웅들로, 그 희생적인 공로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해야하는 책무이며 이제 국가 영웅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할 때이다.

필자는 일생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상이용사들, 고엽제로 인해 불치병으로 시달리는 전우들과 325,000명 월남전 참전자들이 한강의 기적을 위해, 또한 장렬히 산화한 5,099명의 용사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며, 훈장(勳章)없는 국가 영웅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참전 용사들의 훈장(勳章)없는 국가 영웅들이 자기 몸을 불태워 80대 노구들이 빛을 내는 촛불처럼 부()는 국가에 안겨주고, 월남전 참전자들에게 양민 학살했다는 현 세대에 떠밀려 가난하게, 불명예 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너무도 통탄스러울 뿐이다. 훈장(勳章)없는 국가 영웅들에게 이 글을 바치는 바이다.





< 국방부 출입기자 김만조 >

 

[ 참고자료 ]

1. 전근식 소대장 체험수기(일기장)

2. 파월한국군전사 4, 5/국방부

3. 통계로 본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p31-61/최용근/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4. 월남전과 한국 p152-184/유영옥/다온출판사

5. 군사학 재미있는 전쟁사 p438~443/이재평/글로벌

6. 잊혀 진 전쟁과 달러 p65~78/박종식/동화서적

* 연락처 : 경기 용인시 수지구 풍덕로 148번지 5-11

전 근 식 (010-2485-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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