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2년 12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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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엽제전우회 부산지부, 통영상륙작전 전적지 순례
작성자 kookbangco


 



 

해병대 상륙작전 통영지구

방역수칙준수 전적지 참배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부산지부(지부장 강성의)8일 코로나19 방역수칙 철저준수 속에 관내 16개 지회장과 지회회원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경남 통영시 현충길에 위치한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통영지구전적비에서 참배행사를 갖고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기렸다.

통영지구는 72년 전인 1950625일을 기해 기습 남침한 북한군에 의해 대부분을 점령당한 국군은 마지막 보루인 부산을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설치하고 격렬하게 전투를 전개 중, 낙동강 전선을 뚫지 못하자 거제를 돌아 부산으로 진격하려던 북한군 6사단을 김성은 해병부대가 통영에서 궤멸시킴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낸 승리의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1950년 북한군이 625일 새벽 38선을 돌파한 지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20일 대전을 거쳐 호남지방을 석권한 후 8월 중순에는 마산대구포항 방면으로 압박을 했고, 북한군 6사단은 마산을 점령키 위해 86일 진동~마산 간의 도로를 차단한 후 8161개 대대(650)가 고성을 거쳐 통영으로 침입해 통영시가지를 장악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817일 김성은(1924~2007, 4대 해병대사령관, 15대 국방부장관) 해병 중령이 지휘하는 해병 제1대대는 통영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펴 해군과 함께 작전을 전개, 해군 함정들이 통영 항으로 접근하여 망일봉, 남망산 및 부두에 집중 함포사격을 가하자 북한군은 해병대가 통영항 정면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한 듯 고지에 배치했던 병력을 통영항 일대 해안선으로 이동 배치시켰다.

이에 김성은 부대는 북한군이 없는 통영 용납면 장평리 앞바다를 통해 수월하게 장평리에 상륙해 교두보를 확보하고, 이튿날 새벽 1개 중대를 고성에서 통영으로 진입하는 요충지인 원문고개(통영읍 북방 3km)로 진출시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통영에 진입한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한편 북한군 후속부대가 고성에서 통영으로 추가 진입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또한 통영시가지를 내려다보기 쉬운 망일봉(해발 148m)을 점령해, 뒤늦게 망일봉을 점령하기 위해 올라오는 100여명의 북한군을 사살해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

김성은 부대는 그날 오후 해군으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 병력을 지원 받아 819일 새벽 총 공격을 감행, 통영에 주둔한 적군을 완전 섬멸하고 오전 10시 통영시가지를 탈환했다. 당시 패잔병 2백여 명이 목선 3척을 이용하여 해상 도주하다가 우리 해군 함정에 의해 격침 궤멸됐다.

통영해병 상륙작전은 해병대가 단독으로 해군함정의 지원 하에 수행한 최초의 상륙작전으로 625전란이 시작된 이후 적군의 수중에 들어간 국토를 처음으로 되찾은 작전이며, 이 작전에서 해병대는 적군 사살 469, 포로 83, 기타 다수의 무기와 장비를 획득하는 전과를 올렸고, 반면 아군의 피해는 19명의 전사와 47명의 부상자뿐이었다. 이 작전을 계기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823일 이 전투상황 취재를 위해 현지를 방문한 미국 종군 여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는 신문기사를 통해 ‘Ghost-catching Marines(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제목으로 기습적인 상륙작전으로 우세한 적군을 공격해 적의 점령지를 탈환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며 그들(한국 해병대)은 악마조차도 잡을 정도였다고 대서특필한 것이 오늘의 한국 해병대를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전적지 답사행사 후 강성의 지부장은 인사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조치 철저준수로 건강보호에 더욱 유념하시고, 변절기에 독감예방 등을 통해 가정의 안정을 유지해 나가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복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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