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자 : 2022년 8월 1일 광고문의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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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달의 호국인물 - 인천상륙작전 첩보부대지휘 임병래 해군 중위
작성자 kookbangco
 


 작전성공에 큰 기여, ‘인천상륙작전’ 영화 실제인물

 

  전쟁기념관은 9월의 호국인물로 故임병래(1922~1950) 해군 중위를 선정했다. 임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1950년 4월20일 사관후보생 9기로 임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자 해군은 8월13일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첩보수집부대를 편성했다.
해군첩보부대는 임병래 중위 등 정보장교가 포함된 17명으로 구성, 8월17일 부산을 출발, 8월22일 인천 앞바다의 영흥도에 상륙한 첩보부대는 3개조로 나뉘어 활동을 개시한 가운데, 임병래 중위는 인천으로 잠입, 밤낮으로 영흥도와 인천을 오가며 첩보활동을 지휘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임 중위는 남아있던 공작원들과 접선하여 서울지역까지 첩보 영역을 넓혀나갔다.
  같은 해 9월1일, 맥아더사령부 정보부에서 파견한 클라크 해군 대위의 첩보대가 영흥도에 도착하자, 해군 첩보부대는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미군 첩보부로 전달했다. 첩보부대가 보낸 정보는 인천 해안 암벽의 높이와 적의 병력 및 보급관계, 기뢰부설 등의 내용으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14일, 첩보부대원들은 북한군에 포위, 임 중위는 홍시욱 이등병조와 함께 첩보부대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끝까지 맞서 싸우다 최후의 순간 ‘기밀유지’를 위해 권총으로 자결을 했다.
  이들의 위국헌신 노력은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을 통해서도 임 중위와 함께 한 첩보활동 내용들이 크게 소개된 바 있다.
  정부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2013년에는 해군의 유도탄 고속 함 10번함을 ‘임병래 함’으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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